로즈는 로즈가 로즈인 것
의미의 불가능성에 대한 세 개의 소품들
1. 부드러운 단추들
2. 로즈는 로즈가 로즈인 것
3. 사라짐
정희승
아주 먼 옛날 세계는 둥글어서 여기저기 빙글빙글 다닐 수 있었다.
어디서든 어딘가로 갈 수 있었고 어디든 남자, 여자, 아이들, 강아지, 소, 멧돼지, 어린 토끼, 고양이, 도마뱀, 동물이 있었다. 그때는 그랬다. 강아지, 고양이, 양, 토끼와 도마뱀 그리고 아이들 누구든 세계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어 했고 자기 자신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로즈가 있었다.
그녀 이름은 로즈였다. 만일 내 이름이 로즈가 아니더라도 나는 로즈일까. 그녀는 생각하고 또 생각하곤 했다.
만일 내 이름이 로즈가 아니더라도 나는 로즈일까. 나에게 쌍둥이가 있었더라면 그래도 나는 로즈였을까.
그녀 이름은 항상 로즈였고 아버지 이름은 밥, 어머니 이름은 케이트, 삼촌 이름은 윌리엄, 고모 이름은 글로리아, 할머니 이름은 루시였다. 그들 모두 이름이 있었고 그녀 이름은 로즈였지만 내 이름이 로즈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외치곤 했다. 내 이름이 로즈가 아니더라도 나는 로즈일까.
정말로 세계는 온통 둥글어서 여기저기 빙글빙글 다닐 수 있었다.
거트루드 스타인, 『세계는 둥글어』
“tertius equi(말의 세 번째)…….” 나는 피식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뭐라고 했느냐?” 사부님이 물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잠깐 살바토레 수도사가 한 말이 생각나서 웃었습니다. 살바토레 수도사는, 저기 있는 세 번째 말에다 자기만 아는 마법을 걸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살바토레 수도사가 저 말을 가리키면서 tertius equi라는 겁니다. 이렇게 말하면, u가 되고 말지 않겠습니까?”
“u라니?” 별생각 없이 내 말을 듣고 있던 윌리엄 수도사가 반문했다.
“그렇지 않습니까? tertius equi라고 해버리면 ‘세 번째 말’이라는 뜻이 아니고, equs(말)라는 단어의 세 번째 글자라는 뜻이 되어 버리지 않습니까? ‘세 번째 말’이 아니라 u가 되고 만 셈이니 이런 엉터리 라틴어가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
사부님의 얼굴이 내 쪽을 향했다. 어둠 속인데도 나는 그의 얼굴이 활짝 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가 소리쳤다. “네 이놈! 복 받거라! 오냐, 오냐, suppositio materialis[소재의 오해]와 관련된 문제였구나! 아, de re(사물에 대한 것)가 아니라 de dicto(말에 대한 것)이었구나! 아이고 이런 돌대가리!”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이윤기 옮김(열린책들, 2009)
어쨌거나 아직 한 가지 이름이 더 남아 있으니,
당신은 상상도 못할 이름,
인간이 아무리 연구한들 찾아낼 수 없는 그런 이름 –
고양이 혼자만 알고 있을 뿐, 절대로 말해주지 않는 이름
고양이가 심오한 명상에 잠겨 있는 걸 발견한다면,
그것은 늘 같은 이유
바로 깊은 생각에 빠져 있기 때문
자신의 이름을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음미하는 시간
말할 수 없는, 말로 하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깊고 불가해한 단 하나의 이름
T. S. 엘리엇, 『캣츠-노련한 고양이에 관한 늙은 주머니쥐의 책』, 김승희 옮김(문학세계사,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