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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러시아 상호교류 30주년 기념으로 기획된 온라인 기반의 전시 《네 번째 차원을 본 사람》은 시간과 공간을 주제로 다룬 양국의 현대미술작가 9인(팀)을 선정하여 진행한다. 이론물리학계의 세계적인 석학이자 미래학자인 미치오 카쿠는 3차원 이상의 고차원을 다루는 물리학 서적 『초공간(Hyperspace)』(1994)을 출간했다. ‘네 번째 차원을 본 사람’은 이 책의 소제목 중 하나로, 동명의 이번 전시에서는 서로 다른 시간과 문화적 환경, 지리적 공간에 있는 동시대 예술가들이 각자의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하고, 상상하는 방식을 들여다본다.
전시의 주요 키워드인 ‘네 번째 차원’은 3차원의 공간에 시간을 더한 4차원의 시공간을 뜻한다. 이는 곧 우리가 사는 세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동시에 3차원의 공간에 사는 사람들이 개념적으로 이해하고 상상하는 다른 차원을 지칭하기도 한다. 또한, 본 전시에서 네 번째 차원은 작가의 해석과 상상으로 바라보는 세계이면서 한국과 러시아라는 서로 다른 문화를 바라보는 눈이기도 하다. 지구를 덮친 전례 없는 팬데믹 상황에 맞서 온라인이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구현되는 전시의 특성을 반영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각자 자신이 속한 곳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만나는 전시야말로 또 다른 네 번째 차원이 아닐까 상상해보았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문화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물리학적 발견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우주에 기본적으로 작용하는 법칙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시간과 공간을 시공간으로 통합하고, 물질과 에너지를 하나의 장으로 설명하며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였다. 나아가 우리가 존재하는 차원 이상의 또 다른 차원에 대해 수학적 증명과 가능성을 탐구하였다. 3차원을 넘어서는 고차원 공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19세기 후반부터 이어졌는데 당시 대중문화 전반에 깊이 파고들어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와 오스카 와일드, 거트루드 스타인 등 문학가뿐 아니라 알렉산드르 스크랴빈 같은 러시아 음악가들에게도 영감을 주었다. 미술에서는 파블로 피카소가 입체주의적 화풍을 탄생시키고 마르셀 뒤샹이 표현주의라는 새로운 미술사조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백여 년이 지난 지금, 네 번째 차원을 보는 작가들의 시선으로 동시대를 다시 바라보는 시간을 마련한다. 인터넷을 통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은 점차 희미해져 간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 어떤 시간으로 살고 있든지 서로 연결된다. 물리적 실재에 의한 경험은 디지털 매체를 통한 경험으로 전이되고, 가상의 경험이 실제 삶에 다시 침투하여 우리 경험의 총체를 이룬다. 본 전시를 준비하면서 한국 그리고 러시아 작가들과 주고받은 수많은 메일 속에서 지금 우리가 속한 시대의 단면을 바로 볼 수 있었다.
정희승과 엘레나 아노소바는 사진을 통해 시간을 이야기한다. 《로즈는 로즈가 로즈인 것》(2016)은 거트루드 스타인의 동화 속 소녀에서 영감을 받아 책이자 전시의 형태로 만들어졌다. 그 안에서 다시 3개의 소주제로 나뉘며 삶의 주기 속 관계와 성장, 정체성에 대해 사유한다. 또한, 각기 다른 사진 연작은 순환의 과정으로 연결되며 반복되는 삶과 시간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한편, 엘레나 아노소바는 바이칼 호수에 있는 올혼섬의 겨울을 담은 〈하얀 시간〉(2013~2016)을 통해 모든 것이 얼어붙어 정지된 시간을 공유한다. 외부와 단절된 차가운 동토에서 아주 먼 옛날부터 이어져 오는 삶의 기억, 그리고 자연과 인간의 공생 구조를 담았다.
알렉산드라 파페르노는 〈버려진 별자리〉(2015-2018)에서 국제천문연맹이 채택하지 않아 인정받지 못한 별자리들을 그림으로 기억한다. 1922년 국제천문연맹은 88개의 별자리만을 공인하였는데 이는 어떠한 과학적 기준이나 문화적 맥락 없이 임의로 정해진 것이었고, 선택받지 못한 나머지 별자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었다. 그러나 그 별들은 과거의 밤하늘을 밝혔고 기록이 남아 있으며 여전히 저 먼 우주 어딘가에 있다. 존재하나 가리킬 수 없는 것, 단일화와 표준화로 가려져 있는 것들을 불러오는 시도는 신제현의 〈30분〉(2018)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남한과 북한의 특수한 상황에서 시간을 둘러싼 역사적, 정치적, 이념적 상황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진기종의 〈지구보고서〉(2010)는 지금 이 순간이 자연의 순환 주기에서 한 지점일 뿐인지, 아니면 인류가 자연을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파괴하고 있는 것인지 질문을 던진다. 10년 전 작품이지만 팬데믹 상황을 겪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이다. 그의 또 다른 작업 〈자연모방의 어려움〉(2017~진행 중)은 사물을 인식하는 과정을 낚시에 비유해 탐구한다. 가짜 미끼를 만들고 이를 이용해 진짜 물고기를 낚는 과정에서 사실과 허구의 관계, 나아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에 대해 사유한다.
김희천은 2016년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선보인 〈멈블〉을 온라인 버전으로 재제작하여 〈나 홀로 ‘멈블’ 보기〉(2020)로 선보인다. 도그 쇼의 형식을 빌려 실제 공간과 여러 층위의 가상 공간들을 이동하며 온라인과 오프라인, 사실과 허구의 상호작용으로 모호해지는 실제성을 다룬다. 과거 실제 전시되었던 풍경과 같이 구현된 웹/모바일 속 전시장에서 상영되는 영상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지금 위치한 곳’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디지털 매체와 회화를 결합해 작업하는 키릴 마카로프는 시인이자 정신분석학자인 크세니야 코노넨코와 협업하여 제작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태양이 소금 모래에 닿으면 사향의 맛이 난다〉(2020)는 전시 및 디지털 매체 등을 통해서 가상 게임 공간에서 기술, 예술, 그리고 시가 만나는 실험을 보여준다. 한편, 2000년에 결성된 웨어 독스 런은 다양한 기술을 기반으로 일상에 신화적인 요소들이 어떻게 개입하는지, 인간이 또 다른 현실과 어떻게 상호작용할 수 있을지 탐구한다. 〈1, 4... 19〉(2014)에서는 현실 세계가 이루어지는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 시간, 공간, 인식의 상호작용을 살펴본다. 여기서 미래는 실현된 과거와 실현되지 않은 과거의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다.
앞선 웨어 독스 런의 작업이 시간을 공간화하여 보여주었다면, 김준은 공간을 청각화하는 실험을 시도한다. 김준은 실제 머물렀던 곳, 유년 시절의 추억이 녹아있는 곳들에서 소리를 채집한다. 소리를 통해 지역적인 특성을 담아내며 나아가 눈에 보이지도, 귀에 들리지도 않는 산업시설물의 전자기 파장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고찰하는 ‘오디오 생태학(Acoustic ecology)’으로 작업 세계를 넓히고 있다.
본토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시간대를 가진 러시아(UTC+2~+12)와 단일한 시간대의 한국(UTC+9)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시간에 대한 개념을 각자 어떻게 인식하는지, 시간에 영속된 공간을 바라보는 관점은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시공간 속 삶의 풍경은 어떠한지 호기심이 생겼다. 러시아 동쪽에서 서울까지 비행기로 불과 1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데 우리는 그간 서로를 너무 멀게만 느꼈다. 본 전시를 기회로 러시아와 한국 작가들의 시선을 통해 양국의 심리적 거리를 좁혀보고자 한다.
나아가 2020년 이전과 이후의 세계를 바라본다. 예년 같으면 오프라인으로 선보였을 전시가 온라인 플랫폼으로 옮겨져 진행되는 과정에서 시간과 공간을 경험하는 방식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변화하는 시대의 패러다임 안에서 세계를 인지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새로운 세계가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다.